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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부정공>학생공휘급묘표(學生公諱깈墓表)
學生公諱깈墓表 公諱깈字君玉姓趙氏居湖南之谷城自其先代善積于家行著于鄕世保醇德居多吉士槩而言之謝官自靖忠孝雙全推副正篤於友于聲聞不替推相好亭晦迹林樊敦尙儒術推梅窓至其紹述闡繹重光先德亦竹軒居士是稱於公爲大父父諱宣命妣珍原朴氏考萬轍 元陵乙丑純廟乙亥其生卒公性根孝友十一歲丁外艱執喪如成人朔望展墓雨雪下避衆皆謂竹軒有孫弱冠因公事入城府地主藐之不禮焉見其擧漢高待酈食其故事而諷之則輒歛衽起敬曰吾過矣深加歎賞平生聲色不遽罕言人過失而至事闕大義處論議峻發未嘗撓屈治家有法奉祭祀盡心婦家無嗣貲甚饒欲擧而屬之公謂蜾螺微物尙有依托况於人乎廣求其族子立後而尺寸不與焉儲經史敎子孫嘗戒之曰遠法古人莫如近法我家祖先祖先言行念玆在玆則孝悌之心油然感發就其感發處用工得非事近而易效者乎隣里有乖於常情不容隱忍者遂招之向僻靜曉譬人倫其人遂改心如初此其行治大略噫富貴尙可求壽考或可能爲名義中人難一之未易矧子孫而曾玄曾玄而雲仍愈久愈新者尤以見趙氏積蔭之未艾也配海州吳氏僉樞光夏女葬在求禮桂肆面上楡谷負甲之原一子宗濂二女楊時煥吳邦眞其次宗德宗仁女安濟倫孫曾以下別錄五世孫愚植追慕先德思有以下朽問及於余遂依狀叙次如右後之人庶有以攷焉 月城 崔益鉉 撰 학생공휘급묘표(學生公諱깈墓表) 공의 휘는 급(깈)이요, 자는 군옥(君玉)이며 성은 조씨인데 호남의 곡성에서 살았다. 그 선대부터 가정에서 적선(積善)하고 고을에서 조행(操行)하여 대대로 두터운 덕을 보유(保有)하였으며 거향(居鄕)에 착한 선비가 많았다. 대체로 보면 공은 벼슬을 사절하고 스스로 망복절(罔僕節)을 지켜 충효쌍전한 것은 부정(副正)에서 옮겨왔으며 우애를 돈독히 하여 성문(聲聞)이 끊이지 아니한 것은 상호정(相好亭)에서 옮기었으며 자취를 림천에 감추고 유학을 숭상한 것은 매창(梅窓)에서 옮겨 그 이어서 기술하고 밝혀 주역하여 거듭 선덕(先德)을 빛낸 것은 또 죽헌거사(竹軒居士)라 일컬으니 이분이 곧 공의 대부(大父)였다. 부(父)의 휘는 선명(宣命)이요, 비는 진원박씨(珍原朴氏) 만철(萬轍)의 녀(女)였다. 원릉(英祖) 을축(一七四五)과 순묘(純祖) 을해(一八一五)가 그의 생졸(生卒)이었다. 공은 천성이 효우하여 十一세에 부친의 상을 만나 장성한 사람같이 집상하여 비와 눈을 가리지 않고 삭망에 성묘하니 여러사람이 다 죽헌(竹軒)이 착한 손자를 두었다 하였고 二十세에 공사(公事)로 관청에 들어가니 성주(城主)가 경시(輕視)하고 답례를 않다가 한고조(漢高祖)가 역이기를 접대한 고사를 비유로 말하며 가늘게 풍자함을 보고 이내 옷깃을 여미고 공경하며 내가 잘못되었다 하고 깊이 탄상을 더하였다. 평생에 음성과 안색을 당황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과실을 들추지 아니하나 큰 의리에 관계 된 일은 준열(峻烈)하게 발론하고 조금도 굽히지 아니하며 법도 있게 집안을 다스리고 지성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며 처가에 후사가 없고 재산이 많이 있어 전부를 들어 자기에게 보내고저 하니 공이 가로되, 『나나리벌과 소라와 같은 미물이라도 의탁할 곳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일까보냐』 하고 널리 그 족자(族子)를 구하여 후사를 세우고 추호의 재산도 상관치 아니하였다. 경사(經史)를 저장하여 자손을 가르치며 일찍 경계하되 멀리 옛 사람을 본 받는 것이 가깝게 우리집 선조에게 효도하는 것만 못하니 선조의 언행(言行)을 이에 생각하고 거듭 살핀 즉 효제(孝悌)의 마음이 구름피어로듯 감동발양(感動發揚)할 것이니 그 감발한 곳에 따라 공부하면 이것이 가깝게 섬기고 쉽게 효모(傚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이웃 마을에 상정(常情)이 괴이(乖異)하여 은인불용(隱忍不容)한 자 있으면 마침내 불러 조용히 인륜으로써 훈계하면 그 사람이 반드시 마음을 고쳐 착한 길로 드니 이것이 그 행의의 대략이었다. 아! 부귀는 오히려 가히 구할 수 있으며 수고(壽考)도 혹 가히 할 수 있으나 성문을 나타내기란 어려운 것이다. 한사람 그렇게 되기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아들과 손자 증손과 현손에 또 후손까지 영구히 새롭게 한다는 것은 더욱 조씨의 여경이 융성한 것이라 하겠다. 배는 해주오씨(海州吳氏) 첨추광하의 녀(僉樞光夏之女)로 규례(求禮) 계사면(桂肆面) 상유곡(上楡谷) 부갑지원(負甲之原)에 안장하였다. 일자(一子)는 종렴(宗濂)이요, 이녀(二女)는 양시환(楊時煥) 오방진(吳邦眞)의 처이고 그 다음 종덕(宗德) 종인(宗仁)이며 녀는 안제륜(安濟倫)이요, 증손이하는 별록한다. 五세손 우식(愚植)이 선덕을 추모하여 영구히 전하고저 내게 부탁하므로 마침내 장문에 의거하여 우와 같이 다음을 서술하니 뒤 사람이 써 상고하기를 바라노라. 월성(月城) 최익현(崔益鉉)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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